Jungle Magazine: 한국 디자이너, 색상의 상처를 보듬다
   http://magazine.jungle.co.kr/cat_magazine_special/special_temp5_2.asp?… [640]




세계 일등 국가의 일등 도시였던 뉴욕(New York). 전세계 많은 이들이 동경했던 멋들어진 겉모습과 달리 지금의 뉴욕은 수많은 상처들로 얼룩진 아픔의 도시다. 2001년 9월 11일 악몽 같던 테러의 기억이 다 아물기도 전에 터져버린 금융위기, 최근 극심한 양극화와 실업률로 번져가는 사회적 불안에 거리로 뛰쳐나온 젊은이들의 ‘반(反)월가’ 시위까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거울에 비친 뉴욕은 지치고, 병들어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이 도시만이 아닌 바로 우리, 아니 지금 세상이 맞닿드린 문제이기도 하다.

위기의 중심으로 뉴욕이 주목 받고 있는 가운데, 아직 이 도시가 살아있다고, 들썩이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바로 예술과 문화. 돌이켜보면 건강했던 ‘빅 애플(Big apple)’의 뉴욕 사회와 경제를 지탱했던 힘의 원천도,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주던 에너지도 다름 아닌 예술과 문화였다. 작금의 위기 속에서도 그것들의 힘찬 움직임은 여지없이 피어나고 있고, 여기에 우리 디자인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뉴욕 한복판에서 이 도시와 세상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손을 내민 것이다.

뉴욕 아트게이트(Artgate)갤러리에서 열리는 '위기와 디자인([global] Crisis & Design)'전.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비영리디자인단체인 'IM(the Institute of Multidisciplinarity of Art, Architecture and Design)'이 마련한 이 전시는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실업, 고령화, 양극화, 주택 문제 등 갖가지 위기를 소통의 이야기로 담아낸다. 건축, 조경, 그래픽, 패션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17인의 참여작가들은 각각의 위기를 저마다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에 따른 다양한 해결책을 작품을 통해 넌지시 드러낸다.

먼저, 이번 전시를 기획한 ‘Xenogenesis’의 최창학은 주택 위기를 화두로 삼았다. 뉴욕 시민들의 주택 소유 욕구와 경제 위기의 상관관계를 짚어보고, 동일한 모듈의 반복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임시주택 ‘상호적 건축(reciprocal architecture)’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친환경적을 재해석한 자전거 거치대, 바이크 행어(Bike Hanger) 프로젝트를 선보인 ‘매니페스토 아키텍쳐(Manifesto Architecture)’의 안지영, 이상화는 인구밀도가 높은 뉴욕의 환경 속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수퍼매스(supermass) 스튜디오의 차태욱은 지역 생태학적인 접근과 사회문화적 이슈에서 파생된 조경디자인 전략을 보여준다.

강기은, 김다연, 이지은 세 사람은 함께 작업한 공공 가설물인 '비주얼 퍼미아빌러티 파빌리온(The visual permeability pavilion)'를 선보인다. 한국의 정자를 모티브로 만든 이 작품은 불안에 지친 이들을 달래줄 따뜻한 공간을 표방한다. 김동일과 이서주는 자연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대지, 주거, 사회기반시설이 공존하는 도심의 확장을, 김홍민은 맨해튼을 재생력있는 도심으로 진보시키기 위해 공공공간의 가치를 연구한다.

일자리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위해 테크놀러지 아티스트 신수경은 '죽지 않는 꿈(Immortal Dreams)'을 통해 꿈을 잃어가는 그들을 보듬는다. 자체 발광하는 날개 패턴의 재킷을 입고 두 팔을 벌리면 날개도 같이 올라가고, 가만히 있으면 날개도 힘없이 늘어진다. 그래픽디자이너 조유연은 영어의 보급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소수언어를 보듬고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뉴질랜드 한 부족의 언어로 책을 만들었다. 그들의 언어는 영어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패션 쪽에서는 최효진, 하가희, 김지원 디자이너가 전시에 나선다. 풋웨어(footwear) 디자이너인 최효진은 제3세계 나라들의 가난과 배고픔의 문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메시지로 전달한다. 패션 디자이너 하가희는 고령화와 이민자 차별문제,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소통의 부재를 ‘노부인을 위한 꽃(Flower for Old Woman)’이라는 작품으로 우회적으로 꼬집는다. 이 꽃은 이국땅에서 무관심 속에 홀로 죽음을 맞이한 어느 한국인 할머니의 버려진 옷가지와 이불로 만든 것이다. 김지원 패션 디자이너는 작품 ‘소중한 수선화(Dear Narcissus)’를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정신적 외로움을 표현한다.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비현실적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개인의 삶과 인간의 문명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불안정한 현실과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선상에 서있는 지금 세상에서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할 일은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다양한 해법의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라는 최창학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이 시대를 사는 디자이너들의 또 다른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범지구적 사회문제에 대해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위기의 중심으로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 말이다.